신용회복경험담
실패했지만 끝은 아니었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4.16 16:44
-
5
0
1. 도입부: 도시에서의 안정된 삶
저는 올해 35세, 글로벌 IT 기업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아내와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와 함께 서울 근교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죠. 연봉도 나쁘지 않았고, 회사 복지도 좋아서 이대로 쭉 살면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다 몇 해 전, 아내와 함께 “좀 더 자연 가까운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마침 정부에서 하는 귀농 지원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도시의 바쁜 삶에 지쳐 있었던 것도 있었고, 농촌에서 뭔가 해보자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겼죠. 그렇게 2년간의 준비 끝에, 저는 퇴사하고 충청도 작은 마을로 귀농을 결심했습니다.
2. 전개: 잘해보려던 마음이 부채로 바뀌기까지
초반엔 모든 게 설레었어요. 주말마다 아내, 딸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농기계도 새로 들였죠. 시작은 ‘블루베리’ 재배였습니다. 정부 지원과 함께 은행과 농협에서 총 4,700만 원 정도 대출을 받았고, 대부분은 초기 시설 투자와 자재 구입비로 들어갔어요.
문제는 생각보다 ‘농사’가 쉽지 않았다는 겁니다. 작황도 들쑥날쑥하고, 판로 확보도 제대로 안 된 상태였어요. 유통 경험도 없고, SNS 마케팅도 기대만큼 반응이 없더군요. 수익은커녕, 운영비로 매달 적자가 쌓였습니다. 거기다 가뭄, 해충 피해까지 겹치면서 마음속 ‘포기’가 슬슬 고개를 들었어요.
결국 농사는 접고, 다시 IT 업계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다행히 전 직장에서 인맥이 닿아 재취업은 됐지만, 남은 건 원금 4,700만 원에 이자까지 불어난 채무였습니다. 매달 갚아야 할 이자만 40만 원 이상, 아이 교육비, 생활비까지 감안하면 한숨이 나오는 수준이었죠.
3. 위기: 현실의 무게에 무너진 자존감
처음엔 아내한테 말도 못 했습니다. ‘내가 괜한 꿈을 꿨나’ ‘왜 무리했을까’ 하는 자책감이 매일 들었어요. 점점 대출 이자 납부일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심해졌고, 결국 3개월 연속 연체가 시작되면서 독촉 전화가 오기 시작했죠. 이때는 정말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숨겨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결국 아내에게 솔직히 얘기했어요.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고개도 못 들었지만, 다행히 아내는 오히려 “이젠 해결책을 찾자”며 제 손을 잡아줬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게 ‘개인회생 제도’였어요. 재산보다 채무가 많고, 정기적인 수입이 있으면 법원에 신청해 일정 금액만 변제하고 나머지는 탕감받을 수 있다는 말에 처음엔 의심했지만, 상담을 받아보고서야 현실적인 대안이란 걸 실감했죠.
4. 해결: 다시 일어서는 과정, 힘들지만 해낼 수 있는 길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는 약 4개월 걸렸습니다. 제 상황을 소명하기 위해 당시 귀농 관련 지원서류, 영농일지, 사용 내역을 하나하나 정리해 제출했죠. 회사 급여명세서와 가계부도 정직하게 제출했습니다.
법원에서는 제 상황을 인정해 월 21만 원씩 36개월간 갚는 변제안을 인가해주었습니다. 총 변제금액은 약 750만 원으로, 원래 채무의 15%도 안 되는 금액이었죠. 이자를 생각하면 거의 1/10 수준입니다.
변제 시작 후 첫 달, 자동이체가 완료됐다는 문자를 받고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언가 제 손으로 다시 시작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법원 출석 날은 솔직히 긴장도 되고 떨렸지만, 판사님이 제 사정을 묻고 고개를 끄덕여주셨을 때, 위로 받는 기분이 들더군요.
5. 결말: 다시 도시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중입니다
현재는 변제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직장도 안정됐고, 매달 성실히 변제금을 내고 있습니다. 아내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아이는 밝게 유치원 다니고 있어요. 큰돈을 버는 삶은 아니지만, 불안 없이 잠드는 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습니다.
개인회생은 단순히 채무를 탕감받는 제도가 아니에요. 제 삶을 다시 정돈하게 만들어준 기회였습니다. 귀농이라는 도전은 실패했지만, 그 실패 덕분에 저는 더 단단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에, 무리한 도전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말씀드리고 싶어요. ‘포기’보다 ‘정리’가 먼저입니다. 그리고 정리는,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저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단단히 준비하면, 다시 웃을 수 있어요.